초전도 학교

Sungik
Mahnsoo.choi (토론 | 기여)님의 2010년 9월 8일 (수) 09:5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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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초전도연구의 태동

고온초전도체가 발견되기 이전에 우리나라의 초전도 연구는 거의 전무하였다고 말해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1982년에 헬륨액화기가 표준과학원에 처음으로 도입되면서 박종철 박사를 중심으로 저온시스템이 필수적인 초전도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산화구리 세라믹 초전도체가 발견되고 세계적인 돌진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나라에서 고온초전도체를 처음으로 제작하여 성공한 것은 1987년도 3월초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김정구 교수 연구팀이었다.

부산대학교 장민수 교수 연구그룹도 독립적으로 고온초전도체 합성에 성공하였고,

포항공과대학교는 개교가 되자마자 이기봉 교수, 백성기 교수 등이 이 연구에 참여하여 초전도체 합성에 성공하여 국내 매스컴에서도 연일 초전도체에 관한 뉴스가 발표되었다.

특히 1988년에 이성익 교수는 Bi-2212 단결정 제조에 성공하여 초전도 물성연구의 기초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처에서는 초전도체 연구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국내 전문가들로 구성된 고온초전도 연구협의회를 구성하였다. 고온초전도 연구협의회는 우리나라의 초전도 연구현황과 전망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고온초전도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과제를 발주하도록 하는 기획서를 만들어 제출하였고 이로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고온초전도연구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매년 여름 용평에서 초전도학회의 정기회의가 열리고 연구결과발표와 세계적 선도연구 초청강연을 열고 있다.

그 이후로 십 수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초전도 연구는 대학을 중심으로 한 기초물성 연구와 기업, 국책 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응용연구분야가 눈부신 발전하고 있다. 대학을 중심으로 발전하는 기초물성 연구와 새로운 물질제조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대학을 초월한 "초전도 학교

신물질 개발 경쟁에 치열한 고온초전도체 분야의 연구 활성화 및 급변하는 연구조류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하여서는 독단적 연구에 의한 기대효과보다는 우수한 연구 인력을 유동성 있게 최대한도로 활용하여야 한다. 서로 다른 학문분야 사이의 벽을 허물고 유기적 학제간 협동연구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성익 교수는 1993년 전국 규모의 초전도 연구 모임을 결성하였다. 매년 두 차례씩 초전도 연구 분야의 교수와 학생들을 모아 5박 6일 동안 초전도 계절학교를 열었다. 처음에는 10명으로 출발했지만 나중에는 100여 명씩이 참석하는 대규모 조직이 되었다. ‘아는 것 모두 털어 놓기’를 구호로 합숙에 참여하는 어떤 연사도 자신의 아는 것을 모두 털어 놓아야 한다. 또한 한번에 연사 5명을 초청하고 각 연사는 7시간을 강의해야 한다. 아무리 배짱이 좋은 학자도 초전도 전문가 앞에서 7시간을 강의한다는 사실이 쉬운 일이 아니다. 초전도 학교는 초전도 학자들의 등용문이 되었다. 이곳을 통과하여야 초전도 분야에서 인정을 받을 수가 있었다.

"혼자 하는 연구는 발전을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이를 열린 연구라 칭한다. 고려청자의 도공들처럼 혼자만 하는 폐쇄적인 연구로는 결코 우리나라가 선진국을 따라 잡을 수 없다.”며 과학자들 사이의 정보공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성익 교수는 전국 규모의 초전도연구모임을 구성하였고 전국규모의 초전도 연구 네트워크인 supercon을 개설하고 그리고 전국 초전도 학자들과 전 세계 한국인 초전도 학자들이 정보를 서로 공유했다. 초전도에 관한 어떠한 토론도 할 수 있었으며, 초전도 안내 및 정보를 교환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초전도 전문가나 연구를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초전도 학교 동창들이다.